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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이승만 존경한다며, 4.3을 입에 올리는,,,

제주도민들을 학살한 그들은 누구일까

지난주 4.3특별법 개정 도민보고대회가 관덕정 광장에서 열렸다.

 

4.3의 완전해결을 위한 역사적 진전이라는 평가와 함께 도내 주요 인사들이 모여 4.3특별법 개정안 국회 본회의 통과를 반겼다.

 

아직 4.3에 대한 정당한 역사적 평가와 4.3의 이름을 짓지 못한 숙제를 남겨둔 상태지만 기뻐할 일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보고대회에 참석한 일부 인물들을 보면 좀 씁쓸하다.

 

그들이 가입한 정당에는 이승만의 사진이 걸려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존경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이승만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이다.

 

보수 성향을 지닌 국민들은 그래도 대한민국을 건국한 인물이라 보기도 하고 한걸음 더 오른쪽에 위치한 인사들은 국부라고 칭하기도 한다.

 

진보적이거나 근.현대 역사를 제대로 들여다 본 시민들은 단지 학살자에 지나지 않는 권력 욕심만 가득했던 늙은이라고 혹평한다.

 

이 속에 어느 쪽을 높게 평가할 지는 각자의 판단에 달린 것이지만 이 말만은 하고 싶다.

 

이승만이 없었다면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없었을까 하는 의문이다.

 

19459월 한반도에 상륙한 미군은 1948814일까지 군정을 펼쳤다.

 

군정이라 함은 군인이 정부를 대신하는 것으로 우리나라는 해방 후 3년이 되도록 일제 치하에서 미군정으로 대신하는 통치영역 안에 머물렀을 뿐이다.

 

그러면 이승만은 이 속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을까.

 

미군이 미국이라는 국가 이익에 부합한 인물이라는 평가를 내렸고 그에게 한반도의 반공전선을 맡긴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승만은 미국 유학 경력에 독실한 기독교인이기에 미군정의 입맛에 딱 안성맞춤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승만의 활약에 의해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것이 아니고 다만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는 프로세스 속에 이승만이라는 인물이 미군정에 스카웃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역사학자들도 많다.

 

다시 말해 이승만이 없었다는 가정을 해보면 미군정은 자신들의 취향에 맞는 누군가를 골라냈을 것이고 이승만에게 했던 것처럼 그에게 1948815일 이후 대한민국의 권력을 줬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승만 정권은 해방 정국에서 자국민을 너무 죽였다.

 

현대사의 돋보이는 제노사이드는 나찌 군대에 의한 유태인 학살을 비롯해 일본군의 만행, 더 가깝게는 폴 포트 정권에 의한 캄보디아 학살 등이다.

 

수 백만이 희생됐던 이 사건들은 아직도 인구에 회자되면서 인간성에 대한 회의마저 불러일으키게 하는 실정이다.

 

누군가는 국부로 칭하는 이승만은 어땠을까.

 

5만명 내외가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는 제주 4.3을 포함해 15000여명의 여순사건, 수 십만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진 6.25 예비검속 희생자들, 수 십만 젊은이들을 벼랑으로 밀어 넣은 국민방위군 사건, 국내 곳곳에서 발견되는 집단학살의 현장, 독재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죽음 등등에는 이승만의 그림자가 짙다.

 

아직 어느 역사학자도 이승만 시대에 희생된 국민들의 규모가 이 정도라고 지적하지 않는 가운데 희생자 가족들의 가슴에 맺힌 응어리는 풀릴 기색이 없다.

 

이승만 정권은 제주도민을 토벌하라고 했다, 조상을 죽인 인물의 영향 속에서 출세하는 도민들은 누구인가?

 

이승만 정권은 4.3 당시 여수 13연대에 제주도 토벌 명령을 내렸다.

 

진압과 토벌은 다른 것이다.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의 진압도 그토록 많은 희생자를 낳았는데, 말 그대로 풀을 베듯 하라는 토벌은 과연 어떤 방식으로 진행됐을지 몸서리가 쳐진다.

 

다행히도 동족상잔을 반대하는 일부 장교와 부사관들에 의해 제주토벌 작전은 중단됐지만 이를 반대한 군인들은 거꾸로 여수. 순천 주민들과 함께 죽임을 당해야만 했다.

 

제주도민들에게 이승만이라는 이름은 4.3의 참상과 맞물려 있다.

 

친척 중에 4.3 희생자가 꼭 있다는 제주 섬의 비극을 불러 온 역사의 인물들은 누구이며 그 중심에 있던 자는?

 

그의 사진이 걸려있는 정당 소속으로 제주를 위해 일하겠다는 인물들은 또 누구일까?

 

그들은 과연 4.3의 정당한 역사적 평가와 해결을 바라고 있기는 할까?

 

제주도민들에게 4.3은 과연 무엇이었으며 우리 조상들을 죽인 공로로 그들은 무엇을 가져갔을까?

 

남겨진 후손들은 반드시 이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4.3 추모제를 한 달 앞두고 부끄러운 마음만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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