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림읍(읍장 홍경찬)에서는 지난 주말불법광고물 기동순찰반을 운영하여, 안전하고 쾌적한 거리환경 조성을 위하여 총 8건의 불법광고물을 정비하였다. 한림읍에서는 상시 불법광고물 기동순찰반 운영을 통하여 2월부터 현재까지 총 250건의 불법광고물을 철거하였다.
도민과 함께하는 공공병원 제주의료원 제주의료원장 오경생 안녕하십니까. 제14대 제주의료원장으로 일 하게 된 오경생 입니다. 인생 후반기는 평소 하고 싶은 취미생활을 하면서 조용히 사는 것이 진리이고 아름다운 모습이라 생각 합니다만 불행하게도 저는 이렇게 무거운 일선에 다시 서게 되었습니다. 사실은 많이 부끄럽고 어깨가 무겁습니다. 저는 의료인은 아닙니다만 제주도 보건복지여성국장 당시 제주·서귀포의료원을 지도하고 지원하고 감독을 하였던 사람으로서 제주의료원의 특성이라든가 문제점을 어느 정도 알고 있기 때문에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도 제주의료원의 미래 가치 창출을 위하여 제주지역 공공병원으로서 해야 할 일을 찾아내고 그 일을 해내고자 이 어려운 길을 택하였습니다. 많은 분이 제주의료원 운영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기대 반 우려 반 그 어려운 곳에 가서 어떻게 일을 하겠냐고 걱정을 해주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허지만 제주의료원의 지금의 위상과 위기가 또 하나의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발로 뛰는 실무 형 원장으로 업무에 임하고자 합니다. 저는 이미 종합병원인 서귀포의료원에 4년간 근무하면서 정말 어려운 여건 속에
(독자칼럼)그들의 공화국 구름나그네 뉴스가 보기 싫었던 시절이 있었다 이명박 박근혜시절, 소시민인 필자가 느끼는 하루의 새소식은 절망과 분노로 가득 찬 기대없는 세월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는 온갖 비리와 참사는 울분을 넘어 무기력을 느끼면서 차라리 뉴스를 보지않는 소극적인 행동으로 옮겨졌다 국가예산을 아무런 견제도 받지 않고 온갖 허황된 사업에 쏟아 붓고 그결과 엄청난 예산낭비를 불러왔고 개인의 치부에 열중하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았다 304명의 소중한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참사를 목격하면서 느꼈던 구조와 수습의 과정은 이게 나라인가 하는 탄식을 불러왔고 더 이상 기억하고 싶지 않은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무수히 쏟아내는 대다수 언론의 기사는 위안은 커녕 진실규명에도 다가서지않는 소음에 불과했다 시간이 흘러 촛불민주시민의 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정부를 접하면서 느꼈던 희열은 참으로 형언할 수 없는기쁨과 기대감이 가득한 현재진행형이다 대한민국의 지도자가 가진 자질과 공감능력, 정책들이 강력한 대통령 중심제의 대한민국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체감하고 있다 이제는 과거가 되어버린 지난 일을 다소 장황하게 늘어놓는 이유인즉 과거를 반면교사삼아
잠깐의 편의를 위한 불법 주정차 아직도 하고 계십니까? 대천동주민센터 최은정 불법 주정차로 인한 사회적 손실이 화두가 된 것은 어제 오늘 일만은 아니다. 최근 경기도 용인에서는 불법 주차 차량 때문에 도로 진입이 어려운 소방차에게 길을 터주기 위해 시민들이 불법 주차 차량을 손으로 들어 옮겨 소방 차량이 화재 진압을 하도록 도와 이 시민들에게 감사를 표하며 표창을 수여할 예정이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지난 3월 25일 ‘민식이법’ 시행 후로 온 국민이 어린이 보호구역 내 교통사고 위험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고 있는 가운데 단골처럼 등장하는 이슈 또한 불법주정차 차량에 대한 문제이다. 어린이 보호 구역 내에서 제한 속도 이하로 운행하던 중이라도 불법 주정차 차량으로 인해 시야확보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린이가 갑자기 튀어나올 경우 부득이하게 사고를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매번 불법 주정차로 인한 사회적 손실에 대한 문제가 이슈화 되고 이에 대한 대책으로 합법적으로 주차할 수 있는 공간 마련, 주차 단속을 강화하는 고강도 안전 대책이 마련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법 주정차 문제는 우리 사회의 고질병처럼 남아있다. 지하철이라는 대중교통이 없는
한국공항공사(사장 손창완) 제주지역본부는 7월 27일(월)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도내 전통시장 활성화에 적극 기여하고자 제주시 민속오일시장과 자매결연을 체결하였다. 김수봉 한국공항공사 제주지역본부장은 이번 자매결연으로 매월 2일, 7일자를 ‘전통시장 가는 날’로 지정하여 민속오일시장의 물품을 적극 구매함으로써 전통시장 및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애월읍(읍장 부태진)은 27일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하여 분야별 공공시설물 등 방역활동을 점검 보고회를 개최하였다. 이날 점검회의에서는 지속적으로 공공시설물 방역 및 현장배치되어 있는 기간제근로자 등 방역 안전수칙 및 가이드라인 등 안내하여 적극 홍보 당부였다.
애월읍사무소(읍장 부태진)와 애월읍지역자율방재단(단장 김광휘)은 지난 9일 태풍 등 여름철 자연재난에 대비하고자 애월체육공원 및 고내포구에서 풍수해 대응훈련을 실시하였다. 이날 훈련은 대피안내 및 주민대피, 양수기를 이용한 침수지역 응급배수, 재난안전선 설치 등의 순서로 진행하였다.
공직의 끝자락에 선 베이붐 세대 베이비붐(Baby boom)은 출생률의 급상승기를 말하는 것으로 주로 전쟁이후에 많이 일어나는 현상이다. 우리나라도 한국전쟁이후 1955년부터 1963년까지 태어난 약 730만 명의 출생자들이 베이비붐 세대라고 한다. 베이비붐 끝자락 세대가 정년을 맞고 있다. 그동안 공직사회도 많은 변화를 이어 왔다. 새마을 운동이 사회의 중심에 있던 시절, 88올림픽 준비를 위해 성화 봉송로 주변 밭 돌담정비, 정낭을 놓고, 작업복 츄리닝 차림에 지붕도색을 위해 공무원들이 페인트공이 되었다. 주5.5일 근무하던 시절 토요일, 반공일이 되면 산으로 바다로 자연정화 활동을 시작으로 오후에는 쉬는 반공일, 노동의 댓가로 막걸리 한잔을 마시던 추억도 있다. 지휘보고나 중요한 사업보고서는 필경사나 타자수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던 시절, 선망과 아부의 대상이 되기도 했었으나 컴퓨터의 등장으로 비인기 직종으로 사라져 갔다. 청렴문화가 탄생하면서 가라오케, 살롱이 없어지고, 노래방 문화로 대신하였다. 공직사회가 획기적인 변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철밥통이라는 공직사회도 공무원 연금제도의 변화가 일기 시작하고, 기업과 같
거지가 없도록 하였던 제주의 식사문화와 청렴 친근하게 지내는 지인과 점심식사를 하면서 식사비를 필자가 지불하였다. 그러자 지인이 “언제나 동장님이 [식사비를] 냄수과? 굳이 경해야 되쿠가?”하면서 불편한 속내를 드러낸다. 또 언젠가는 지역의 선배로부터 청탁금지법이 생긴 이후 공무원과의 소통이 매우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예전에는 함께 식사도 하면서 친목을 도모하기도 하고, 그런 관계 속에서 새로운 사람과의 인간관계를 형성해 나가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런 생각조차 못하는 시대가 되었다. 제주 고유의 공동체문화가 사라져가는 것 같다.”고 불만 섞인 소리를 하였다. 어떤 때는 식사하러 갔는데 지인이 먼저 나가면서 식사비를 지불하고 가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때는 필자 본인이 불편하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 세대는 먼저 나가면서 친한 사람의 식사비 정도는 내지 않으면 뭔가 미안하게 생각하는 문화가 남아있다 보니 식사하러 갔을 때 친한 사람과 만나게 되는 상황이 불편하다. 예전에 라디오 방송에서 오랫동안 활동하였던 분으로부터 제주에 거지가 없는 이유는 밭일을 하다가 점심이든 간식이든 먹는데 지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밥 먹엉 갑서’하고 권유를 하는 공동체문화가 있
기 고 문 항상 감사하며 사는 삶 잊을만하면 이슈화되는 아동학대 사건들을 접하다 보면 답답한 마음을 넘어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지난번 국민들에게 충격을 안긴 창녕과 천안 아동학대 사건들을 보며, 어른들이 얼마나 미성숙하고 이기적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 사건들 속에서도 피어오르는 선행을 행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가정위탁지원센터를 통해 일반가정에 위탁된 한 아동이 친가정으로 돌아가 아동학대를 받은 사건이다. 그 아동은 위탁가정에서의 행복했던 돌봄을 기억해내고 다시 그 가정으로 가고 싶다고 소망을 내비쳤고, 위탁가정에서도 그를 다시 보호하고 싶다고 전했다. 이에 나는 큰 안도감과 함께 따뜻한 선행을 행하는 그분들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제주가정위탁지원센터를 처음 접한 것은 홍보전단지에 우리 딸처럼 예쁜 아이 사진 한 장이 있어서 자세히 들여다보았을 때였다. 나는 그 아이를 보며 망설임 없이 센터로 연락을 했지만, 당장은 불가능했기에 작은 금액이지만 기부를 먼저 하기 시작하였다. 그 작은 실천을 시작으로 가정위탁과 인연을 맺은 것이 벌써 8년이 지난 듯하다. 일반가정위탁모교육 과정을 거쳐, 위탁도 해보았고 지금은 센터에서 자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