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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주년을 앞둔 4·3, 대만 2·28에서 치유방안 찾다

 

제주4·3희생자유족회(회장 양윤경)1115일부터 18일까지 유족회 임원과 지역별 유족대표, ·보상특별위원회 위원을 비롯해 양조훈 전 제주도 환경부지사, 고창훈 제주대학교 교수 등 39명이 참여한 가운데 대만 타이베이를 방문했다.

 

이번 방문에서 유족회는 2·28국가기념관(관장 양전뤙)을 비롯해 2·28기념공원, 총통부 등을 찾아가 화해와 상생을 위한 역사적인 발걸음을 내딛었다.

 

특히 양전뤙 2·28국가기념관장과 2·28연구보고서 총주필을 맡은 대만국립중앙대 제항라이 교수 등이 참석한 가운데 국제교류 좌담회를 개최해 대만 2·28을 재조명하고, 4·3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짚어봤다.

 

이번 방문에선 2·28사건의 진상 규명과 상처 치유, 배상 과정을 비교하면서 아직도 한국 정부가 외면하고 있는 배·보상 문제와 새 정부가 들어선 대만의 재규명 작업 등을 살펴보는 계기가 됐다.

 

지난 152·28국가기념관(관장 양전뤙)에서 개최한 국제교류 좌담회는 양조훈 전 부지사가 사회를 맡아 진행했다.

 

양윤경 유족회장은 “4·3 70주년을 앞두고 대만 2·28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특히 국가적인 배상이 이뤄지는 과정을 진솔하게 배우러 왔다고 방문 목적을 설명했다.

 

좌담회에서 대만국립중앙대 제항라이 석좌교수는 대만 정부는 처음엔 기념비만 세우면 된다고 했지만 1995년 보상조례, 2007년 배상조례로 개정했다제주4·3도 정부의 적당한 배상과 미국의 책임문제를 다룰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양전뤙 2·28국가기념관장은 오랫동안 같이해온 친구들을 만난 느낌이라며 “2·28도 진상규명과 배상이 이뤄지는 과정에 난관이 많았지만 계속 전쟁을 치르는 심정으로 끊임없는 노력을 해왔다고 말했다.

 

양 관장은 이어 그래서 배상 신청은 지금도 진행 중이며, 5년마다 배상업무가 실시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2·28사건의 진상 이외에도 대만 정부의 2·28 피해자에 대한 배상 진행상황, 내년 70주년을 맞는 2·28의 행사계획, 대만 새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과거사 재조사와 희생자에 대한 명예회복안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표명했다.

 

방문 이틀째인 16대만 2·28과 제주4·3의 협력 체제 구축이란 주제 아래 라이 교수와 고창훈 교수가 발표하는 국제 컨퍼런스가 열렸다.

 

1947년 발생된 대만 2·28사건은 발생시기와 배경, 섬 주민과 본토 주민과의 갈등, 진압군에 의한 무자비한 토벌, 40년 동안 정부에 의해 논의 금지 등 제주4·3과 너무 흡사한 사건이다.

 

그후 두 사건은 정부의 진상조사보고서 발간, 정부수반의 사과, 국가기념일 지정 등 그 해결방법도 비슷했다.

 

그러나 대만 2·28은 한걸음 더 나아가 피해자에 대한 배상을 추진한데 이어 지난 5월 출범한 민진당 소속 차이잉원 총통이 과거사에 대한 재조사와 희생자에 대한 명예회복을 천명하고 나서서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2·28사건은 다음과 같다>

2·28사건의 배경과 발단=대만은 194550년 동안의 일제 식민 지배에서 벗어나 광복을 맞이했다. 당시 대만 인구 비율은 본성인 주류를 이뤘고 외성인은 20%에도 미치지 못했다.

 

참고로 본성인(本省人)은 명나라와 청나라 시절 대만에 터전을 잡은 초기 이주자이며, 외성인(外省人)은 광복을 맞이한 후 중국 대륙에서 건너온 사람들이다.

 

외성인은 인구 비율이 적었지만 국민당 정권 아래 고위 관리직을 독차지하는 등 기득권 세력을 이뤘다. 이로 인해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계층 간 갈등과 대립을 겪게 됐다.

 

사건의 발단은 1947227일 타이베이에서 정부 전매품인 담배를 허가 없이 노상에서 팔던 린쟝마이라는 노파가 전매청 단속반원에 의해 무차별 구타를 당한 데서 시작됐다.

 

시민들이 과격한 단속에 항의는 과정에서 경찰이 발포한 총에 학생 한 명이 사망했다.

 

다음 날인 228일 분노한 군중들은 봉기해 경찰서에 난입한 데 이어 행정장관청을 항의 방문했다. 그러나 기관총으로 총살을 당하면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를 계기로 민중의 분노가 폭발해 대만 전역에서 항쟁이 벌어졌다.

 

국민당군의 진압과 학살=천이 행정장관은 언론·집회·결사의 자유를 요구하는 민중 궐기에 대해 장제스(장개석) 총통에게는 정부 전복 시도라고 보고하고, 증원군 파견을 요청했다.

 

19473월 국공내전에도 장제스는 2개 사단 병력을 파견했다.

 

국민당군은 본성인에 대해 무차별 학살과 약탈을 자행해 섬 전체는 초토화됐다. 더구나 사건처리위원회 구성원으로 활동했던 엘리트들도 처형했다.

 

사건은 40년 동안 금기되다=1949년 대만 전역에 내려진 계엄령은 1987년까지 38년간 이어졌다. 사건 발생일로 보면 40년 동안 2·28사건은 금기시 됐다.

 

계엄령 해제 후 진상규명 운동이 일어났다. 대만 출신인 리덩후이 총통은 1995년 국가 차원에서 희생자 유족에게 사과를 했다. 사건 발생 50주년인 1997년 정부는 공식적인 사죄와 더불어 타이베이에 2·28기념공원을 조성했다.

 

1992년 발표한 2·28사건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희생자 수는 18000~28000명으로 추산했다.

 

앞서 대만은 1995년 이미 배·보상 조례를 제정했다. 사망·실종자는 평균 2억원을 지급했으며, 구금을 당한 사람에 대해선 형량에 따라 최고 17000만원에서 최저 2000만원이 지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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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없는 세상을 맨들쿠다!” 제17회 ‘아동학대 추방의 날’
제주특별자치도아동보호전문기관(관장 정원철)은 지난 4월 26일 제주경찰청 은광홀에서 2024년 제17회 아동학대 추방의 날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제주도는 2007년 전국 최초로 아동에 대한 학대와 폭력의 심각성을 도민에게 알리고 아동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아동학대예방 및 보호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여 매년 4월 27일을 “아동학대 추방의 날”로 선포했다. 올해 17회째를 맞이한 아동학대 추방의 날 기념행사에는 도지사 격려사(복지가족 강인철 국장 대독)를 시작으로 제주특별자치도 김광수 교육감, 도의회 보건복지안전위원회 김경미 위원장, 제주경찰청 곽병우 차장이 아동학대 대응 일선에 있는 기관들을 격려하고 아동학대 예방 유공자 표창 수여식이 진행됐다. 또한 유관기관 및 신고의무자, 학부모 등 300여명이 아동학대 추방 결의를 다지는 퍼포먼스를 가졌다. 특히 2부에서는 아동학대예방교육(광역새싹지킴이병원 강현식 위원장)과 함께 ‘아이 마음에 상처주지 않는 습관’의 저서이자 육아 인플루언서 ㈜그로잉망 이다랑 대표의 부모교육 특강으로 현장에 뜨거운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 냈다. 도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전국에서 유일한 아동학대 추방의 날을 맞이하여 이 곳 제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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