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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서귀포 오름마다 사연이,,,

당오름, 사라오름, 산방산과 단산, 시오름

한라산의 원시림을 환형(環形)으로 지나는 둘레길은 과거 일제시대 일본군들의 병참도로이다.

 

군수물자 조달을 위해 한라산 지역에서 자라는 나무를 실어 나르고 또한 한라산 숲에 조성된 표고버섯 재배장에서 생산되는 작물을 이 도로를 통해 옮겼다.

 

한라산을 빙 둘러가며 머리띠 두르듯이 도로가 형성되어 있어 일명 머리띠를 뜻하는 일본어 하치마키도로라고 불리기도 한다.

 

서귀포자연휴양림에서 미악산에 이르는 길은 하치마키 도로의 일부코스라 할 수 있다.

 

법정사와 도순천, 시오름 자락을 지나 솔오름 입구까지 이르는 길은 아직도 지나는 계곡 위로 촘촘히 돌을 깔아 길을 만들었던 흔적들이 역력하다.

 

또한 길 중간에는 과거 화전민들의 생활 터전이었던 숯가마터와 4·3사건 당시 유격대와 토벌대들이 은거했던 돌담 등 역사의 유물들이 산재하고 있다.

 

 

 특히 시오름 일대에 분포하는 삼나무와 편백나무로 조림된 지역은 한라산 둘레길이 본격적으로 정비될 경우 최근 각광 받고 있는 치유와 명상을 위한 삼림욕의 최적지로 여겨지는 곳이다.

 

서귀포자연휴양림은 한라산 남쪽지역의 유일한 생태휴양관광의 거점 지역이다. 숙박시설은 물론 해발고도가 800미터여서 여름에도 서늘한 기운이 가득하다.

 

인근에는 제주 최초로 항일무장투쟁의 현장이었던 법정사가 자리 잡고 있다. 법정사 바로 옆을 지나는 도순천은 효례천 버금가는 제주의 대표적 하천 중의 하나로 한라산 영실계곡에서 발원하여 풍림리조트가 있는 강정으로 흘러든다.

 

과거에는 서귀포와 중문 인근의 주민들이 식수원으로 사용할 만큼 맑고 깨끗한 물을 공급하는, 생명의 젖줄이다. 지금도 영실에서 하원으로 이어지는 도수로가 남아 있다.

 

조선시대, 한라산을 오르던 시인묵객들도 이 코스를 통해 영실 존자암에서 묵었다가 한라산 정상에 다다르곤 했다. 하치마키 도로는 대략 해발고도가 600미터에서 700미터 사이를 따라 이어진다.

 

도순천 같이 규모가 큰 하천을 건너는 급경사 지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코스가 경사가 밋밋한 평지라고 할 수 있다.

 

코스의 꼭 중간지점에는 시오름이 솟아 있다.

 

 굼부리 없이 봉곳하게 솟아올라서 숫()오름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시오름 자락은 도순천에 비해 조금 작은 내가 흘러가는데, 악근천(岳近川)이라고 한다. 본래의 뜻은 아끈내로 산 주변에 있는 작은 내라고 풀이할 수 있지만 다랑쉬오름 옆의 아끈다랑쉬처럼 큰 내에 비해 조금 작은 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서귀포시 동홍동 지경인 시오름 일대에는 일제시대에 심어놓은 삼나무와 편백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지역이다.

 

 삼나무는 어른 두 사람이 이어 안아야 겨우 닿을 만큼 두께도 두껍다.

 

삼나무에 비해 생장속도가 느린 편백나무도 우람하기 이를 데 없다.

 

1930년대 후반부터 해방 전까지 일본인들이 인공적으로 심어 놓은 것들인데, 오래된 편백나무 중에는 수령이 무려 70년 이상으로 국내에서는 가장 오래된 편백나무이다.

 

 편백나무는 목재로써의 효용 가치도 뛰어날뿐더러 삼림욕에는 가장 뛰어난 효능을 발휘하는 테르핀이라는 물질을 가장 많이 내뿜는다. 편백나무 군락지로 유명한 전남 장성군과 경남 남해군에 비교해도 이곳의 수림이 가장 오래고 우수하다.

 

과거 돈내코코스와 함께 한라산 남쪽에서 한라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남성대코스가 바로 이곳에서 출발한다. 지금도 미악산 북쪽에 남성대 대피소 건물이 쇄락한 채 남아 있다.

 

 한라산 선작지왓과 남벽에서 발원한 골짜기가 이곳에서 합해져서 효돈천을 이루며 쇠소깍으로 흘러든다. 두 계곡을 일명 산벌른내라고 하는데, 바로 산을 장작을 두 쪽으로 쪼개듯 벌른다는 뜻이다.

 

 실제로 서귀포 지경에서 한라산을 올려다보면 움푹 패여 쪼갠 계곡이 보인다. 남성대코스의 들머리는 오름, 일명 미악산 북쪽인데 표고버섯 재배장으로 이어지는 길이 지금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레이다기지가 있는 미악산 정상까지는 최근 제2산록도로에서부터 산책로가 조성되어 아침 저녁으로 인근 주민들의 산책코스로 명성을 올리는 길이다.

 

서귀포 시가지와 칠십리 앞바다를 수놓는 세 개의 섬과 마라도까지도 한 눈에 내려다보이 절경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수명을 관장한다는 남극 노인성, 곧 수성을 바라본다 하여 남성대코스라 했는데, 미악산 정상이 바로 그런 장소이다. 미악산 자락 일대는 머지않아 헬스케어단지가 들어선다.

 

찾아가는 길

 

솔오름에서 자연휴양림까지는 15킬로미터 정도 되는 장거리코스다. 게다가 한라산의 등산로처럼 잘 정비된 것도 아니어서 중급 이상의 산행경력이 있어야 무리가 없다.

 

경사가 가파르지는 않지만 길고 두 세 차례 급경사의 계곡을 오르내려야 한다. 특히 장마철 우기에는 계곡을 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한라산에 폭우가 내릴 경우 하천이 범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귀포자연휴양림에서 솔오름까지 하치마키도로는 전혀 때 묻지 않은 자연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코스이다. 사려니숲길도 일반에 알려진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

 

이 코스의 들머리는 서귀포자연휴양림과 솔오름 산책로이다. 서귀포자연휴양림은 숙박시설을 모두 갖추고 있는 곳으로 여름에는 계곡을 갖추고 있어 피서지로 인기가 높은 곳이다. 솔오름 산책로는 제2한라관광도로에서 시작되는데, 대중교통수단이 없어 승용차로만 접근이 가능한데, 동홍동주민자치센타 사거리에서 제2한라관광도로로 진입하여 전망대가 있는 맞은편이다.

 

 

산방산

 

드넓은 수평선에 종 모양으로 하늘 높이 우뚝 솟은 산방산은 제주 서남부를 대표하는 랜드마크다. 울창한 수림과 뼈대를 드러낸 붉은 빛의 암벽이 위용을 자랑하는 산방산은 수직 높이만도 340여 미터로 제주의 오름 중 가장 덩치가 크다.

 

 산 중턱에는 바다에서 솟아오를 당시 형성된 해식동굴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지질을 연구하는 이들에겐 실로 살아 있는 화석인 셈이다. 제주 신화 속에서 한 사냥꾼이 쏜 화살에 맞은 옥황상제가 홧김에 한라산 백록담을 쑥 뽑아서 던졌는데, 이 때 날아와 생긴 게 바로 이 산방산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실제 백록담의 둘레와 산방산의 밑동이 거의 엇비슷하다. 영주십경으로 이름난 산방굴은 고려말 제주 승려 혜일선사가 이곳에 굴사(窟寺)를 창건한 곳으로 유명하다

 

 산방산 인근 마을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추사 김정희가 자주 찾았으며 그의 벗 초의선사도 이곳에서 수도를 했다. 10여 미터 깊이로 패인 굴사 안에는 천정에서 낙숫물이 떨어지는데, 여신 산방덕의 애달픈 전설이 스며있다.

 

산방산 인근 마을의 인간 세계를 관장하던 여신이 산방굴에 살고 있었다. 어느 겨울 병든 노모의 병구완을 위해 산머루를 캐러 산방산에 올랐다가 폭풍우를 만난 고승이란 청년이 산방굴로 피신했다.

 

 고승의 착한 마음씨에 감동한 여신은 자신도 인간이 되어 고승과 지내고 싶은 소망이 싹텄고, 그녀는 과감히 신의 지위를 버리고 인간이 되기로 결심한다.

 

 인간이 된 그녀는 산방산에서 내려왔다고 해서 산방덕이라 불렸고, 고승과 혼인의 연을 맺어 행복한 인간의 삶을 살았다. 그러나 산방덕이의 미모를 탐하던 사또는 온갖 감언이설과 선물로 산방덕의 환심을 사려했으나 오매불망 남편만을 섬기는 산방덕이는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사또는 남편과 산방덕을 떼어놓을 심산으로 살인누명을 씌워 남편을 귀양 보내고, 이도 모자라 귀양길에 죽인다. 눈엣가시같은 남편을 없앤 사또가 산방덕의 마음을 얻으려 하였으나, 산방덕은 인간세상의 추악함을 보고 환멸감에 자신이 환생했던 산방굴로 들어가 바위로 변했고, 자신 때문에 고통 속에 죽어간 고승을 그리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산방굴 천정에서는 산방덕이의 서글픈 눈물인 양 물이 떨어졌다. 산방굴사 벽에는 조선시대 이곳을 찾았던 시인묵객들이 남긴 마애명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산방굴 입구에는 수백 년의 풍상을 겪어낸 우람한 소나무가 문지기처럼 굳건한 자세로 벼랑 위에 버티어 서 있다.

 

천연의 성곽처럼 솟아 오른 산방산의 벼랑엔 사시사철 푸른 구실잣밤나무 등의 상록수림이 울창하고 특히 수직의 암벽에는 지네발란, 풍란, 석공, 섬회양목 등 멸종위기에 처한 식물의 피난처이기도 하다. 바닷가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산방산 정상에는 선인탑이라 불리는 바위가 있는데 천혜의 전망대다. 해안가로로 파도가 넘실거릴 때마다 햇살에 반짝이는 윤슬이 사금파리처럼 빛나는 바다가 아찔한 절벽 아래로 펼쳐진 풍경은 산방산의 압권이다.

 

서귀포 앞바다의 문섬과 범섬이 아스라하고 형제섬과 가파도, 마라도가 눈앞에서 아른거린다. 이웃하여 나지막하게 솟아 있는 바굼지오름 자락으로 오밀조밀 펼쳐진 농경지의 모자이크 조각은 인간 산방덕이가 정성스레 기운 조각보 같다.

 

 

찾아가는 길

 

제주시에서 갈 때는 평화로 경유하는 시외버스를 타고 산방산 사계에서 내린다. 서귀포시에서는 서회선 시외버스를 타고 산방굴사 앞에서 내린다.

 

 일주도로 상에 있는 산방산은 서남부를 대표하는 관광지로 산방굴사는 물론 인근의 용머리해안까지 둘러볼 수 있다. 산방연대가 있는 용머리해안을 따라 올렛길 10코스가 지난다. 올렛길을 모두 걸을 여유가 없을지라도 용머리 해안가를 따라 이어진 산책로만이라도 꼭 걸어보기를 권한다.

 

 

산방산을 가장 웅장하게 볼 수 있는 길일 뿐 아니라 해녀들이 직접 잡은 해산물도 맛 볼 수 있다. 푸른 바다 넘실거리는 파돗소리가 걷는 내내 벗해준다. 산방산 정상으로 가는 길은 북면의 보덕사 입구가 들머리다. 우거진 숲은 따라 1시간 30여분 올라가는 급경사의 난코스다. 산불예방기간인 3월부터 5, 9월부터 10월 동안에는 통제되기도 한다.

 

바굼지오름(단산)

 

 

산방산 서녘 들판에 아담하게 솟아 오른 바굼지오름은 여느 오름과는 색다른 풍광을 지닌 제주 여신의 이색적인 조각품이다. 해풍에 닳은 검은 빛의 현무암 벼랑이 사계마을을 감싸듯이 병풍처럼 에두른 모습이며 동서 양쪽에 쌍벽을 이루듯 엇비슷한 높이의 암봉이 높이를 자랑하듯 서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석공의 손길로 빚은 듯 기묘한 바위능선이 갈지자 형상으로 뻗어 내린 자태도 수려하지만, 암봉마다 바람의 손길로 휘어진 노송이 점점이 박혀 있는 모습이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시킨다.

 

 해질녘 높이를 다투는 두 암봉 사이로 해가 넘어가는 순간의 바굼지오름은 거대한 박쥐가 하늘을 향해 비상하는 독특한 문양을 그려낸다. 이 오름의 어원이 박쥐를 뜻하는 제주어 바구미에서 비롯되었음을 말해주는데, 인근의 주민들은 이를 소쿠리를 뜻하는 단산(簞山)이라 부르기도 한다. 옛날 온 천지가 물에 잠겼을 때, 바굼지오름의 두 봉우리가 물 위에 뜬 모습이 꼭 소쿠리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바굼지오름에는 일제시대 일본군이 오름 중턱의 바위에 굴을 파서 구축한 동굴진지가 원형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오름 중턱에서도 제주 서부의 하늘과 평야가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등산로의 들머리는 동굴진지 진입로 단산사(簞山寺)인데, 사계리와 인성리를 잇는 새미고개라고도 불린다. 새미고개 남쪽으로는 소나무를 심어놓은 금산(禁山)이로 출입을 막고 있다.

 

바굼지오름 걷는 길은 단단한 바위 능선을 따라 사방으로 펼쳐지는 시원한 조망이 특징이다. 널찍한 바위 군데군데 움푹 패인 곳은 마치 공룡 발자국을 연상시키고, 절벽마다 얹혀 있는 기묘한 형상의 바위는 마치 인공으로 꾸며 놓은 전시장을 보는 듯 신비롭다.

 

 바굼지오름 자락의 드넓은 평야는 제주 마늘의 주산지로 유명한데, 모자이크 조각 같은 돌담 경계선 또한 제주 들판이 빚어내는 색다른 풍경이다. 바굼지오름 정상에서는 들판을 사이에 두고 종처럼 솟아 있는 산방산이 손에 잡힐 듯이 솟아 있고, 너머로는 한라산과 오름물결이 그려내는 하늘금이 아스라이 보인다. 해안가로는 형제섬, 가파도와 마라도가 손짓하듯 다정히 서 있다.

 

바굼지오름 남쪽 자락에는 제주도 유형문화재 4호 대정향교는 조선시대 제주의 세 향교 중 하나로 태종 16(1416)년 대정성 내에 창건되었다가 효종 4(1653)에 지금의 터로 옮겨졌다.

 

 조선후기 제주에 유배된 추사 김정희가 바굼지오름 인근의 대정골 적거지에서 이곳을 출입하며 후학을 양성한 곳으로 유명하다. 향교의 강당인 동재(東齋)에는 추가의 친필로 새긴 의문당(疑問堂)이란 편액이 걸려 있었으나 지금은 추가기념관으로 옮겨 보관중이다.

 

학문을 할 때 항시 의문을 가져 임하라는 대가의 가르침이 묻어나는 간판이다. 향교 경내에는 삼강오륜의 뜻을 담을 소나무 세 그루와 팽나무 다섯 그루가 오래된 세월 속에서 거목으로 자라 있는데, 소나무는 한 그루만 남아 있다. 추사가 남긴 불멸의 작품 세한도(歲寒圖)에 등장하는 소나무의 기상이 그대로 묻어난다. 향교 서쪽 바굼지오름 자락에는 석천(石泉)이라 불리는 샘이물이 있다. 예전에는 인근의 주민들이 생수로 사용했던 샘인데, 지금은 말랐다.

 

 

제주에서 갈 때는 평화로를 경유하는 시외버스를 타고 사계리에서 내린다. 서귀포시에서는 서회선 일주도로를 타고 사계리에서 내린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대정향교 주차장에서 주차 후 향교 옆에 있는 샘이물로 오르면 된다. 향교에서 인성리로 넘어가는 새미고개에서 오를 수도 있다.

 

 새미고개에서 단산사 옆으로 오르는 길과 최근에 조성된 단산 진지동굴 가는 길 두 갈래로 나뉜다. 모두 정상에서 만나는데 단산사로 가는 길이 본래의 길로 더 운치 있다. 진지동굴 가는 길은 하산 후 잠시 들를 수 있는 짧은 길이다. 등산 후에는 대정향교 경내를 돌아볼 수 있는데 제주의 옛모습의 정취가 한껏 묻어나는 곳이다. 강건하게 자라 있는 추사의 세한도에 등장한 듯한 소나무와 팽나무에도 세월의 풍치가 녹아 있다.

 

네비게이션 정보 :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3124-1, 대정향교

 

 

당오름 정물오름

 

 

당오름은 위풍당당한 자태로 초원 위에 불쑥 솟아 있어서 당당한 오름같아 보인다. 그러나 오름의 어원은 이곳에 마을 사람들이 염원을 드리던 당()이 있었던 데서 비롯되었다.

 

 척박한 땅과 바람 많은 섬에서 자연의 절대자를 향한 비념의 마음으로 만든 제주 토속신을 모신 성소(聖所)인 셈이다. 서쪽 사면을 빼고 매끈한 풀밭으로 이루어진 당오름 능선을 정상위에 움쑥 패인 굼부리도 맵시를 자랑하지만, 남쪽으로 뻗어 골을 이루는 능선의 선율이 아기자기함을 자랑한다. 게다가 오름 주변에 올망졸망 솟아오름 알오름들이 무덤의 봉분처럼 솟아 있어서 해뜰 무렵 바라보는 이곳의 지형은 살아 쉼 쉬듯 꿈틀거린다. 옛 선인들 또한 그러한 산의 신령스러움에 이끌려 이곳에 당을 지어 들판의 정령들에게 삶의 생사고락을 기대어 살았는지 모르겠다.

 

 

1702(숙종 28) 제주목사 이형상은 이러한 섬사람들의 토속신앙을 누습폐풍으로 간주, 당과 절을 불태우고 저항하는 무당들은 곤장을 쳤다. 유학(儒學)으로 중무장한 사대부의 눈에 나무에 돌에 절대자의 혼령이 깃들어 있음을 믿는, 몽매무지한 민초를 바로잡는다는 명분으로. 당시 불사른 신당이 129, 헐린 사찰은 5개소, 귀농시킨 무당 285명이라고 이형상 목사의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 1703년 간>는 증언하고 있다. 이곳의 당도 그 시절 불길에 타버렸을 것이리라. ‘당 오백 절 오백이라 불리는 이 땅의 종교는 불길 속에서도 살아남아 문화의 이름으로 건재하다.

 

지금은 당의 흔적마저 찾아볼 수 없는 당오름에는 일제강점기 시절 일제가 파놓은 군사용 동굴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제법 경사진 풀밭을 올라 정상 능선에서 바라본 제주 서쪽의 들녘은 광활함을 자랑한다. 한라산이 없었다면 제주 전역이 한 눈에 안겨올 듯 너른 벌판으로 펼쳐지는 오름의 물결이 너울처럼 일렁인다. 삼태기를 엎어놓은 듯 움쑥 패인 굼부리를 한 바퀴 돌다 유난히 눈에 띄게 산담이 있다.

 

가파른 굼부리 사면을 따라 돌담을 가지런히 쌓아올린 게 고관대작 집안이 아니면 엄두도 내지 못할 유택인데, 중종대왕의 후손이다. 드라마 속 대장금이 의녀로 있으면서 모시던 임금이다. 사화가 많았던 시절 이곳에 유배 온 왕족의 후예인 듯싶다.

 

당오름과 정물오름 자락은 제주 최대의 목장 이시돌이다. 43사건과 625동란을 거치며 피폐하고 가난했던 시절이던 1954, 아일랜드 출신의 패트릭 제임스 맥글린치라는 파란 눈의 선교사는 제주도민들에게 자립의 기틀을 마련하고자 이곳에 목장을 개장했다. 호주와 뉴질랜드 등지에서 소와 면양, 종돈을 들여와 한 때 100만 마리 정도의 면양을 키움으로써 동양 최대의 치즈와 우유 등을 생산했고 지금은 젖소와 한우, 경주마를 키우고 있다.

 

중세 스페인의 농부로 농사를 짓는 일에 열성을 다했던 주보성인(主保聖人) 이시돌의 이름을 따 이곳을 성 이시돌목장으로 가꾼 것이다. 목장 외에 성이시돌양로원, 피정센터, 젊음의 집, 삼뫼소 은총의 동산, 천주교금악교회, 어린이집, 글라라관상수녀원, 농촌산업협회 등이 함께 있고 삼위일체대성당이 건축되는 등, 목장보다는 제주의 천주교성지로 더 알려져 있다. 당오름과 엇비슷한 높이로 연이어 서 있는 정물오름은 반달형으로 벌어진 굼부리를 따라 등산로가 이어져 있다.

 

 오름 서녘 자락에 안경 모양의 샘이 나와 정물오름이라고 한다. 광활한 목장 한 켠 오름자락에서 흘러나온 물은 오래 전 이 들판에 기대어 자란 소와 말과 양들에겐 낙원의 샘이었을지 모르겠다.

 

정물오름에는 개가 가르쳐준 명당터라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정물오름 인근 부락인 금악리에 초상이 났는데, 이상하게도 그 집에서 키우던 개가 자꾸 상제의 옷자락을 물더란다. 이상히 여겨 지관과 함께 개가 이끄는 곳으로 갔더니 바로 그 자리가 옥녀금차형(玉女金 形), 곧 옥 같은 여자가 비단을 짜는 형국의 명당자리라는 것이다.

 

찾아가는 길

 

제주시에서는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중문이나 대정 방면 버스(평화로 경유)를 타고 성이시돌 목장 입구에서 내린다. 서귀포나 중문, 대정에서는 제주행 시외버스를 타고 성 이시돌목장 입구에서 내린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에는 평화로와 1115번 산록도로 교차로에서 금악리 방면으로 5분 거리에 이시돌목장 입구가 있다. 들머리에 오름 표지석과 안내판이 있다.

정물오름 인근의 이시돌 목장에는 방문객들을 위한 전시관이 마련되어 있어 목장의 발전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또한 목장 안에 은총의 동산이라 불리는 곳은 천주교 신자가 아니어도 자주 찾아가는 오름 위의 연못으로 삼나무 숲에 둘러싸인 호수와 한라산이 바라보이는 풍광이 아름다운 곳이다. 인근의 금악 오름은 정상까지 시멘트포장도로가 있어 차를 타고 오름 정상까지 갈 수 있다.

 

사라오름

 

한라산의 숨겨진 산정호수, 마침내 그 신비를 드러내다

 

 

길이 있었다. 단풍나무 서어나무 물참나무 오순도순 숲을 이뤄 고요하고, 가녀린 산새들의 노래가 바람결에 아련한 선율로 귓바퀴에 스미던 길. 늦은 가을 우수수 떨어진 낙엽 밟으며 낮은 언덕에 올라서면 그곳엔 놀라운 광경이 펼쳐진다.

 

 

산 속 깊은 곳에 어찌 이런 호수가 숨겨져 있었을까, 싶게 사면이 완만한 능선으로 에둘러져 포근함이 밀려오는 곳. 첫 대면의 순간은 홀연히 맞닥뜨린 황홀한 평화 바로 그것이었다. 접시에 부어 놓은 물처럼 잔잔한 수면은 실바람에도 수줍게 찰랑대며 쏟아지는 햇살에 물비늘이 보석처럼 빛났다.

 

문패도 어쩜 그리 어울리게 잘 달아놓았을까. 사라오름. 한라산정의 장엄한 백록담이나 밑창이 터질 만큼 깊어서 전설 속의 설문대할망이 빠져 죽었다는 물장올의 비장미와는 유다른 사라오름의 산정호수는 살가운 어미의 따스한 품에 안긴 것처럼 아늑하다.

 

공중에서 내려다본 사라오름의 호수면은 어릴 적 콤파스로 동심원을 그려놓은 듯 동그란 것이 꼭 한가위 보름날 떠오른 달덩이 같다. 호수의 둘레는 어림잡아 250여 미터, 호수를 빙 두른 오름 정상의 능선 둘레는 1km 남짓하다. 가장 높은 곳의 해발고도가 1325m. 울울한 한라산 원시림 꼭 한가운데 솟아 있는 셈이다.

 

화산폭발 시 형성된 화산쇄설물, 송이가 가득 고여 있는 사라오름의 분화구는 비가 올 때만 호수를 이룬다. 한여름 폭우가 내린 뒤 호수 가득 출렁이는 물결이 사라오름의 백미다. 바람 잔 어스름 무렵이면 노을빛 붉게 물든 한라산 정상의 그림자가 호수에 스며들어 환상적 풍경을 빚어낸다.

 

갈수기에는 푸른 호수 대신 널따란 분지가 형성되고 겨울이 되면 어느새 빙판을 이루며 계절 따라 색다른 멋을 선사한다. 한라산 국립공원 지정 이후 인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던 사라오름이 111일 마침내 일반에 공개되며 신비의 호수를 세상에 드러냈다.

 

호수 남쪽에 있는 전망대에 서면 한라산 정상이 구상나무 주단을 깔고 부드러운 능선을 이루며 솟아있고 맞은편으로는 성널오름과 논고악, 동수악을 비롯한 제주 동부지역의 오름이 한 눈에 잡힐 만큼 전망이 시원스럽다. 수평선 맑은 날에는 성산 일출봉과 우도가 아련하게 다가온다. 호수 맞은편엔 새색시 볼처럼 불그레한 흙붉은오름이 수면 위로 머리를 빼꼼 내민 개구리처럼 하늘금을 그리고 있다.

 

사라오름은 본래 신성한 곳을 뜻하는 고어(古語) ‘에서 왔다. 깊은 산 고요한 곳에 자리한 산정호수에 걸맞은 작명일 듯싶다. 탐라왕국의 도읍지 제주의 진산(鎭山)도 그래서 사라봉(紗羅峰)이다. 풍수학에서도 사라오름은 제주의 6대 명혈 가운데 으뜸으로 쳤다. 개미목과 영실(靈室)이 사라오름의 뒤를 잇는다. 그래서인지 호수 사면의 양지바른 숲에 묘지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사라오름의 전망대 남동사면은 제주조릿대로 무성하다. 인근의 숲과는 대비되는 모습은 바로 이십 년 전 발생한 산불 때문이다. 사라오름 남사면에 자연 방화선을 이루는 수악계곡 상류가 불길을 막아 오름의 허리 일부만을 태웠고 그 생채기만 남아 있다. 조릿대 무성한 사면 한가운데 불길 속에서도 살아남은 참빗살나무의 빨간 열매가 햇살 속에서 빛을 발한다. 시련 속에서도 스스로를 치유하는 자연, 그 속에 깃든 생명의 뿌리는 늦가을의 열매처럼 찬연(燦然)하다.

 

제주와 서귀포를 잇는 5·16도로의 명소로 알려진 수악계곡은 사라오름 남사면에서 발원하여 한라산 허리를 적시며 바다로 흘러든다. 해발고도에 따라 갖가지 희귀수목이 자라는 계곡 일대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곳이다. 특히 사라오름과 보리악 사이의 용암협곡은 제주의 산악인들 사이에서도 한라산의 가장 험난한 계곡으로 명성이 나 있다.

 

수악계곡의 원류 중 하나인 사라오름 남쪽 사면에는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흘러나오는 샘이있다. 이 샘에서 물을 끌어다 만든 것이 바로 성판악 등산로의 사라샘물이다. 샘물에서 계곡까지는 무려 4km를 흘러도 시원함이 고스란히 남아 산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찾아가는 길

 

사라오름 들머리는 제주와 서귀포를 잇는 5·16도로 한가운데 지점인 성판악이다. 이곳에서 사라오름까지 거리는 6km, 왕복 4-5시간 정도 걸린다. 사라오름까지는 고도차가 완만한 숲길이어서 걷기에는 큰 무리가 없으나 산행 초보자들에게는 그래도 버거운 산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특히 계절이 바뀌는 11월의 사라오름은 한겨울 못지않게 추운 날씨를 보인다. 따뜻한 겨울옷과 장갑, 귀막이 모자를 꼭 준비해야 한다. 성판악코스를 따라 5.8km 지점에 사라오름 올라가는 이정표가 있다. 등산로에서 사라오름 호수까지 거리는 200여 미터 남짓. 호수 시계방향으로 탐방객들을 위한 목재 계단길이 사라오름 전망대까지 이어져 있다.

 

사라오름 등반 후 등산로를 따라 정상까지 갈 수 있기는 하지만, 일몰 전 하산을 위해서는 아침 일찍 서둘러 출발해야 한다. 동절기인 11월부터 2월까지 12시부터 진달래밭대피소에서 정상등반이 통제되기 때문이다. 사라오름과 정상을 모두 둘러보기 위해서는 아침 8시 이전에는 등산로 들머리에서 출발해야 한다. 정상 등정 후에는 관음사코스를 하산길 여정으로 잡아도 좋다.

 

 왕관능과 장구목, 삼각봉 등 한라산의 비경이 모여 있는 용진각 일대를 지나기 때문이다. 계절 따라 옷을 바꿔 입는 한라산 최대의 하천 탐라계곡의 신비함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산행 초보자라면 성판악에서 정상을 먼저 등반한 후 하산길에 사라오름을 들르는 편이 낫다. 사라오름 입구 등산로에서 전망대까지는 대략 20여분이면 충분하다. 샘은 5km 지점 한 군데만 있다. 성판악휴게소에서 김밥과 간식, 등산장비도 구입이 가능하다.

 

최근에는 아침 산객들을 위해 해장국도 판다. 한라산 인근에는 관음사등산로 입구에 야영장이 있다. 이곳에서 야영을 할 양이면 관음사코스로 정상 등정 후 성판악코스로 하산 중 사라오름으로 갈 수 있다. 이 때도 역시 아침 8시 이전에 등산을 시작해야 일몰 전 하산이 가능하다. 관음사 등산로 들머리에도 관음사휴게소에서도 김밥과 간식, 등산장비 구입이 가능하다.

 

교통편

 

제주시와 서귀포에서 아침 6시부터 시외버스가 오간다. 제주와 서귀포에서 성판악까지 30-40분 걸린다. 평소에도 한라산 정상을 찾는 관광객들로 붐비는 성판악은 사라오름이 개방된 후 이곳을 찾는 이들이 늘어나 성판악 주차장은 매일 초만원을 이룬다. 심지어 도로 양편에 길게 늘어선 차량 때문에 교통 혼잡이 극에 달하는 주말에는 승용차 대신 버스를 타고 가는 편이 훨씬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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