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25년 전‘82년 서귀포시가 승격되던 이듬해 제주에서 처음 찾은 곳은 지금의 서귀포시의 정방동 쯤으로 생각난다. 한국의 제주가 낳은 서예인 소암 현중화 선생을 찾아간 것이다. 대문에 그 이름도 찬란한 玄中和 문패 모습이 생생하다.
선생의 안방이자 서실에서 한시간 남짓 님을 뵙고 난 뒤 마루의 발코니에서 바라본 서귀포 앞바다의 모습은 그야말로 남녘 섬나라의 아름다움의 극치였다. 바로 그런 풍광을 두고 환상이니 낙원이니 하는 표현을 쓰지 않을까. 소암선생을 뵈러간 것이 결국 서귀포칠십리란 환상에 그만 푹 빠지고 만 것이다.
그 이듬해‘83년도 그 아름다운 서귀포를 다시 찾았을 땐 여름밤 정모시(정방폭포)에서부터 천지연을 걸었다. 천지연 입구의 수은등 불빛아래 엄지손가락만한 수만 마리도 넘는 왕매미가 거리에 쫙 깔린 모습도 보았다. 육지에서는 애기손가락 만한 작은 매미 한마리 보기도 힘든데 그렇게 큰 왕매미가 나무며 거리에 나붙어 있으니 행여 한 마리라도 발에 밟힐까 조심조심 걸었다. 그 또한 제주가 곤충의 천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낙원 제주에 반해 정착하여 살기를 만 25년이 되어가는 지천명(50세)이 되어서야 제주시에서 버스를 타고 다시 그 곳을 찾게 된 것이다. 소암선생 생가 앞 해안도로를 따라 천지연까지 걸었다. 일출과 일몰을 볼 수 있으리만큼 전망 좋은 잘 꾸며진 해안도로변 횟집들이 전망을 가리기도 했지만 관광제주가 그 정도는 되어야지, 내심 발전된 아름다운 서귀포의 모습이구나 생각하고 서귀포칠십리 노래를 흥얼거리며 천지연폭포로 향했다.
누군가 천지연을 선계(仙界)로 비유하며 황홀경이라 표현했던가! 신이 선사한 신천지 신비한 세계를 선계라 한다면 가히 천지연의 봄밤의 풍경이 그런 곳이라는 생각을 했다. 천지연 입구에서부터 교각도 새롭게 단장되어 가로등 하나도 미적 감각을 살려 변화시켰다. 천지연을 거닐제 밤에 핀 하얀 목련꽃이 있고 담팔수 등 활엽수의 난대림 오솔길을 지나 밤의 불빛사이로 떨어지는 폭포수야말로 더 이상의“환상적 아름다움”이니“황홀경”이란 표현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적어도 제주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사람은 이곳을 가보라. 아니 꼭 천지연뿐일까. 우리가 제주에 살면서 그 정도의 아름다움도 모르면서 제주인이라고 할 수 있단 말이더냐. 굳이 제주특별자치도가 세계자연유산으로 기필코 등록을 해야 하는 당위성이 아니어도 좋다. 대부분 허니문의 명소가 즐비한 서귀포 해안경관이 일부 호텔울타리로 진입이 제한된 곳이 있지만 요즈음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서 내걸고 있는‘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최남단도시’를 표방하며 날로 아름다움을 더해가는 모습에 더없이 자랑스럽고 제주 산남지역이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데 찬사를 보낸다.
이제는 송산동의 구 서귀포시청사가 옮겨가고 인근에 이중섭 문화거리와 연계하여 소암선생 기념관이 설립될 예정이며, 천지연 언덕위 전망을 가리는 일부 호텔건물도 철거되고 아름다운 서귀포칠십리로 거듭나고 있음은 그만큼 제주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 삶의 질이 나아지고 행복지수를 높여 가리라는 데에 더 이상 이의가 없다.
우리가 제주에 살면서 국제자유도시 제주특별자치도 공직자라면 도보일주를 해서라도 우리땅 제주를 아는 것이 우선 돼야 한다. 나를 알고 제주를 아는 것도 제주의 새바람‘뉴제주운동’이려니, 제주의 왕벚꽃과 유채꽃길이 있는 이봄, 전 공직자가 아름다운제주 서귀포칠십리를 노래 부르며 도보일주 완주를 체험하는 운동이 하루빨리 실현되기를 기대한다.
제호 : (주)이슈제주 | 인터넷신문 등록 제주 아-01005호 | 등록일 2006년 4월 4일 | 사업자등록번호 616-81-55901 창간일 2006년 4월 7일 | 발행인/편집인 고창일| 청소년보호책임자 고창일 010-6742-6007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봉로 329 203동 203호 | Tel (064) 757-1442 Fax (064) 757-1443 E-mail : issuejeju@issuejeju.com ㅣ Copyright ⓒ 2010 (주)이슈제주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