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3년이나 흘렀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숨을 거두던 날은 제주 올레 우도길이 개통되던 날이었다.
이른 아침에 눈을 비비며 TV에서 나오는 소리가 심장을 뛰게 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셨다니.
어떻게 버스를 타러 갔는지 기억조차 할 수 없는 상황.
버스 TV에서는 ‘돈 문제, 어쩌고’하는 기레기의 목소리가 감흥없이 흘렀다.
고 노무현 대통령 분향소에서 한 제주 여성이 헌화하고 있다
있어 보이는 한 중년의 여성은 ‘에구 돈이 뭐 길래’라며 혀를 찼다.
속이 답답했던 나는 ‘아줌마, 조용하세요. 수백. 수천억이나 먹은 놈들은 떵떵거리며 살고 있는데, 아줌마가 돈 받는 거 봤어요?’를 나직하게 내뱉었다.
버스는 얼어붙었고 성산포 부두에서 만난 친구와 눈이 마주쳤어도 누구 먼저 입을 열지 못했다.
겨우 도항선 난간에 기대 담배를 피우다 ‘왜 그랬을까’는 독백 아닌 독백에 친구도 ‘세상이 참,,,’이라며 말을 줄였다.
초여름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우도를 한 바퀴 돌아도 마음은 이미 내 것이 아니었다.
몸 따로 마음 따로 라는 말을 태어나서 처음 실감했다.
적당히 취한 상태로 저녁에 TV를 보다 눈물이 터져 버렸다.
거의 밤새 울었다.
다음날은 눈이 퉁퉁 부어 밖에 나다니기가 창피할 정도였다.
그래도 뜻이 맞는 친구와 낮술을 거를 수 없었다.
그날 밤, 잠들기 전에도 눈물을 흘렸다.
많은 시민들을 울렸던 노무현이 바랐던 세상을 과연 올까?
유시민 노무현 재단 전 이사장은 노 대통령과의 일화를 소개한 적이 있다.
노 대통령이 ‘돈과 배운 것이 많다고 권력을 가졌다고 남을 업신 여기지 않고 없는 사람들도 웃으면서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과연 내생에서 볼 수 있을까요? 라고 물었다 한다.
유 전 이사장은 ‘노 대통령님 생전에는 모르지만 결국, 언젠가는 오지 않겠어요?’라고 답했다 한다.
해변에 숱한 파도가 밀리듯 맨 앞 파도격인 노 대통령은 포말에 지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계속해서 밀려오는 파도들이 나중에는 세상을 변화시키게 된다고 유 전 이사장은 설명을 곁들였다.
‘수 백년 동안 이 나라의 기득권을 일반 민중이 나서서 바꿔 본 적이 한번도 없는 비통한 역사를 우리는 가졌고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격언에 귀를 기울이며 숨을 죽인 채 살아 올 수 밖에 없었다’는 노 대통령의 지적.
‘이 나라의 젊은이들에게 국방의 의무라는 이름으로 희생을 강요했고 엄청난 국방 예산을 쓰면서도 아직 스스로 나라를 지킬 힘 없다는 장성들은 참모총장입네 뭐네 하면 폼만 잡았다는 말이냐’며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고 일갈한 노 대통령의 목소리가 쟁쟁하다.
5월 23일, 올해는 웃으며 노 대통령을 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당연히 그랬어야 한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 13주기인 오늘, 정태춘의 ‘92 장마 종로에서’ 노래 가사 문득 떠오른다.
‘흐르는 것이 어디 사람뿐이냐, 우리들의 한 시대도 같이 흘러간다’
노 대통령의 명복을 빌며 ‘올해도 봉하마을에 가지 못하는 각박한 삶’을 원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