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특별자치도의 갈팡질팡 정책이 한편으로는 우스워 보이다가도 또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리게 됐다.
지난해 원희룡 도정은 녹지국제병원 영업허가를 내주고 말았다.
박근혜 정부시절 보건복지부가 허용한 탓에 지방정부로서는 할 수 없는 노릇이라는 변명과 함께.
허가를 내주지 않을 경우 ‘대규모 소송을 당하게 된다’는 ‘엄살인지 대도민 협박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멘트도 곁들였다.
영리병원 허가에 전국이 들썩였다.
이를 우려하는 국민들은 ‘영리병원 허가라는 물꼬가 터질 경우 제주를 포함한 7개 경제특구에 영리병원이 들어설 것’이고 이는 공공성을 담보로 하는 의료체계를 무너뜨릴 것이라고 한탄했다.
논리는 간단하다.
상당한 시설을 갖추고 실력 있는 의료진들을 거느린 고가의 영리병원을 이 나라 상류층들은 선호할 것이며 돈벌이가 되는 탓에 재벌 등의 투자가 뒤를 이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 경우 의료보험 수입의 상당부분을 감당하는 고소득자들부터 사(私)보험에 들어 현행 의료체계에서 빠져나가게 되고 ‘열악해진 공공의료보험 체계’가 힘을 잃어 급기야 미국식 의료체계를 닮아간다는 걱정이 앞섰다.
몸에 허물이 나서 고름만 뽑아도 몇 십. 몇 백만원이 청구되는 것이 미국 의료계의 현실이라는 소식 앞에 망연자실할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안동우 부지사가 4일 녹지국제병원 허가취소 절차에 들어가겠다고 발표하고 있다
다행이다.
4일까지 영업에 나서지 않은 녹지국제병원에 대해 제주도가 취소 절차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허가를 주지 않아도, 또는 취소 절차를 진행해 원점으로 돌려도 결국 제주도는 소송을 당하게 될 전망이다.
법적인 판단은 결과를 보고 논해도 되지만, 1000억원대 소송 협박에 결코 놔서는 안 되는 것이 ‘의료보험체계’라는 지적이다.
오바마 전 대통령도 못한 의료보험체계의 공공성 회복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오바마 캐어(Obama Care)라는 이름의 건강보험 개혁안을 냈다.
정식 명칭은 ‘환자보호 및 부담적정보험법(Patient Protection and Affordable Care Act)’으로 미국의 의료보험 체계 개혁 법안이다.
민영보험에만 의존하는 의료보험에서 벗어나 미국 국민에게 2014년 까지 건강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월 보험료와 공제금, 의사 진료 및 처방전 발급에 필요한 비용을 본인이 얼마나 부담하느냐에 따라 플래티넘, 골드, 실버, 브론즈의 4단계로 구분되고 가구당 소득과 가족 수에 따라 정부가 건강보험금을 차등 지원한다는 것이 골자.
하지만 미국 중산층 이상, 먹고 살만하고 사보험에 가입할 능력이 있는 계층이 반발했다.
‘왜, 우리의 세금으로 가난뱅이 병원비를 부담해야 하느냐’는 것.
중산층 이상의 목소리가 큰 사람들은 티파티(Tea Party)라는 인터넷상의 조직을 만들어 대항했다.
커피를 많이 마시는 미국인들이 활동단체 이름을 티파티라고 명명한 것은 미국 독립전쟁을 촉발시킨 보스톤 티파티 사건을 배경에 둔 것으로 보인다.
세수를 늘리기 위해 미국으로 수입되는 차에 세금을 물리고자 했던 본국인 영국에 미국인들이 항구에 정박 중인 배에서 차 상자를 바다에 버리면서 본국인과 미국 현지인들과의 갈등이 시작됐고 이는 바로 미국 독립전쟁의 역사로 해석된다.
세금을 더 받겠다면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는 티파티의 경고였고 그들의 으름장대로 오바마는 상.하원 선거에서 대패하고 말았다.
오바마는 한걸음 물러섰다.
그렇다면 형편이 되지 않아 보험에서 소외되는 계층에게 만이라도 ‘정부가 보험을 대신하겠다’고 나섰지만 이 역시 중산층 이상의 계층과 기존 보험업계의 반발에 막혀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이들에 대한 부담을 기존보험에 이양해야만 했던 오바마 캐어는 나중에 ‘그런 소동을 벌이더니 결국 보험회사들의 주머니만 불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권한을 가진 미국 대통령이지만 ‘이미 넘어가 버린 의료체계의 공공성 확보는 털끝도 성공하지 못했다.’
기존 자본시장의 역공이 매서웠고, 등 돌리는 고소득 상류계층의 조소(嘲笑)가 견디기 힘들었다.
결코 책임질 수 없는 의료체계의 붕괴, 원희룡 지사는 어떻게 책임지겠다는 건가.
원희룡 도정이 녹지국제병원 개설허가를 내 줄 당시, 의료체계공공성 붕괴 위험에 대해 질문하는 보도진에게 원 지사는 ‘책임을 지겠다’고 일축했다.
그 장면을 보면서 분노가 치밀었다.
의료보험의 공공성이 무너졌다고 가정했을 경우 원 지사가 ‘본인이 이를 바로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인지 아니면 ‘정치를 은퇴해버리면 그만’이라고 여겼던 것인지는 아리송하다.
전자라면 ‘과대망상’이고 후자라면 ‘도망가면 그만’이라는 배짱이다.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해 ‘국민들이 병마에 신음하는 상황이 됐을 때’ 원 지사는 과연 어떻게 책임을 지겠다고 생각했을까.
아무리 헤아려도 ‘알 수 없는’ 발언이다.
국민적 공분을 일으키는 사건이 제주에서 시작됐다는 점이 부끄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