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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오키나와, 그 군사기지의 운명에 대하여(3)

필자는 지난 7월 30일부터 8월 2일까지 3박 4일 일정으로 일본의 최남단 오키나와를 다녀왔다. 오키나와는 일본의 대표적인 군사기지로서 새로운 기지건설을 둘러싸고 갈등이 끊임없이 전개되고 있는 지역으로 최근 해군기지유치를 둘러싸고 갈등이 폭발하고 있는 제주와 너무나 흡사한 곳이다. 본 연재에서는 기지를 둘러싼 지역갈등과 그 근원적인 치유책을 모색하고 있는 오키나와의 경험을 독자들과 공유하기 위해 오키나와 방문기를 연재한다.

[본 칼럼은 '이슈제주'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이슈제주 -]

오키나와, 그 군사기지의 운명에 대하여(3)
- 1년을 먹기 위해 100년을 팔지 말라 -
 
DON'T FLY OVER OUR CITY! U.S.HELOs OUT NOW!
(우리 도시 위로 비행하지 마라! 미군 헬기는 지금 당장 나가라!)

이건 反기지를 외치는 오키나와 운동단체의 슬로건이 아니다.
후텐마(普天間) 미군기지가 있는 기노완시(宜野灣市), 그 시청 옥상에는 상공에서도 보일만큼의 수 십 미터 길이에 달하는 큼지막한 페인트 글씨가 이렇게 쓰여 있다.

오키나와의 기초자치단체가 이처럼 기지반대를 부르짖고 있는 것이다. 제주시청이나 서귀포시청이 그 청사 현관에 ‘우리 시에는 해군기지 안돼! 기지유치를 반대한다!’라는 커다란 플래카드를 달아놓은 것으로 보면 된다.
지금 제주에서는 전혀 일어날 성 싶지 않은 이런 일이 오키나와에서는 선두에 선 기초자치단체장이나 공무원들에 의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反기지를 외치는 일본의 공복(公僕)

현재 오키나와현 나카이마(仲井眞弘多) 지사는 보수당의 연합공천(자민당과 공명당)을 받고 당선된 경제통이다. 그런 보수계열의 지사조차도 기지의 폐해에 대해선 문제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모양이다.

 
오키나와현청 홈페이지에는 미군기지 때문에 바람직한 도시형성이나 교통체계 정비, 산업기반 정비 등 지역개발을 도모하는데 얼마나 커다란 장애가 되고 있는지 명명백백하게 지적하고 있다.

게다가 기지로 인한 각종 사건사고 및 환경문제, 특히 항공소음, 전투기. 헬리콥터 등 항공기 관련사건(1972년 5월부터 2004년 12월까지 328건, 이 가운데 추락사건 41건. 평균 한달에 1건 발생), 미군에 의한 범죄(1972년 5월 중순부터 2005년 3월말까지 5,328건. 매달 13건, 2-3일에 1건 발생. 5,328건 가운데 흉악범죄 541건, 폭행사건 989건), 유류. 赤土유출에 따른 환경오염, 실탄연습에 따른 산림파괴 등에 대한 지적도 조목조목 빠뜨리지 않고 있다.

 
물론 그는 보수계열의 경제통 지사답게 기지 덕분에 발생하는 수입이 오키나와 경제활동에서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이런 기지로 인한 각종 폐해에 대해 일본의 공복들은 입 다물고 있지 않았다.
“국방을 볼모로 주민희생을 강요해선 안 된다”는 反기지를 외치는 시장(山口縣 岩國市 이하라 가쓰스게 시장)이 있는가 하면, “당선을 위해 입후보 한 것이 아니고 기지 건설을 막기 위해서 입후보한 것”이라고 호소하는 국회의원(2007.7.29 2명을 선출하는 오키나와 참의원 선거에서 두 명 다 기지반대 후보가 당선)도 있다. 기지의 폐해를 너무나 잘 아는 탓이다.
이런 사정은 후텐마 기지가 있는 오키나와 기노완시(宜野灣市) 시장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비상을 준비하는 오키나와 지자체

인구 약 9만 명, 시 전체의 32.4%가 미군기지, 도심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는 2,800m에 달하는 활주로, 각종 항공기 소음과 사고 발생지역, 대표적인 해병대 항공기지, 오키나와가 껴안고 있는 미군기지 문제의 상징적인 도시. 이것이 후텐마(普天間) 기지가 있는 기노완시(宜野灣市)의 얼굴이다.

 
기노완시의 행정수장은 50대 중반의 이하 요이치(伊波洋一), 그의 좌우명은 ‘기지가 없는 평화로운 오키나와’이다.
좌우명에 어울리게 2003년 시장선거에서부터 反기지를 전면에 내건 그는 2007년 선거에서도 연거푸 재선되는 기염을 토했다. 기노완시의 유권자들도 ‘기지가 없는 평화로운 오키나와’를 염원하고 있던 때문이다. 필자가 만난 그의 선거 참모나 도우미들도 전부 그러했다.

2기 연속 시장에 당선된 이하 시장은 기지의 즉시폐쇄와 조기반환을 주장하며 기지가 없는 도시건설을 시정방침으로 내세우며 선봉에 서있었다.
그는 일개 시장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2차례나 손수 워싱턴으로 건너가 미국의 상하 양원 국회의원을 만나 기지의 부당성과 기지의 미국 이전을 호소하는 등 매우 인상적인 행보를 취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은 기지반대만을 부르짖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 탈(脫)기지 후의 기노완시를 어떻게 할 것인가, 그들은 실현가능한 미래를 디자인하고 있었다.
1996년 12월 후텐마 기지 반환이 결정된 이래 3개월 전인 2007년 5월에 이르기까지 기지 활용방안에 대한 심도있는 논의가 진행되었고 ‘기본방침’이나 ‘행동계획’도 확정되었다. 지방행정의 주도면밀함, 그들은 그렇게 진지하게 미래를 설계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지를 활용했을 때의 효과가 궁금한 필자는 시장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봤다.
“기지를 떠나보내고 도시를 개발했을 때 예상되는 효과는 어떻습니까?” 시장의 답변은 간명했다. “장기적으로는 6만 명의 고용효과가 창출되고 1조 엔에 달하는 경기유발효과를 예상하고 있습니다.” 현재 기지 근무자가 200명에 지나지 않는 점을 감안한다면, 예상되는 미래 고용창출효과는 무려 30배에 이른다.

후텐마 기지면적이 481헥타르(145만 평), 하기야 그 광대한 땅에 일본인 근무자가 고작 200명이란 사실이 되레 부자연스런 일인지도 모를 일이다.
어떻게 해서 이런 예측이 가능할까?

 
사회통합은 여론수렴 과정에서 완결

반환된 기지 서쪽은 해안공원, 중장기 체류형 대형 복합상업시설, 인터콘티넨탈호텔 숙박시설, 리조트 핵심시설.

기지 동쪽은 자연환경을 보전하면서 시가지, 도로, 상하수도, 대규모 후텐마공원 조성 등 지속발전가능한 도시건설.

기지 남쪽은 고차원의 기능을 갖춘 미래도시 건설을 통해 오키나와현 중남부 도시권의 진흥에 기여.

도시전체를 연결하는 선진적인 공공교통 시스템 정비, 고차원의 정보통신 기반 정비, 개성적이고 선진적인 환경 조성, 역사와 전통을 배려한 주택지 조성, 학생을 대상으로 한 평화교육과 평화사상의 사회적 확산, 재원마련과 개발방안 확립 …….

기노완시는 이런 그림들을 디자인하고 있었다. 언뜻 보면 무책임하고 화려한 공약처럼 들린다. 그러나 내막은 전혀 달랐다. 이 디자인은 일본정부. 오키나와현. 기노완시 3자가 머리를 맞대었고, 여기에 수 년간에 걸쳐서 토지소유자, 전문가, 시민대표, 유관단체 대표 등의 의견을 충실히 수렴하면서 도출한 합의안이었다.

그러니 일방적으로 결정된 사항을 시민들에게 설득시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충분한 여론수렴을 거치면서 사회적 통합까지 완결시켜 나간 것이다.
기노완시 미래에 대한 이하 시장의 확신에 찬 태도는 이런 사회적 합의가 존재하기 때문인 셈이었다. “결정했으니 따라오라! 내가 책임을 지겠다!”, 그들은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이다.

제주, 그를 기다리는 운명의 신은?

“운명은 스스로 결정하는 자의 것이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반 세기 넘게 자기 운명이 자기 것이 아니었던 오키나와가 이제는 자기 운명을 자기가 결정하려 하고 있다. 기지강행과 기지반대가 충돌하는 여전히 버거운 고투는 기다리고 있지만, 동시에 새로운 여명도 스스로 준비하고 있는 듯 했다.
그렇다면 제주는?
필자가 두고두고 아쉬운 것은 이제 지구상에 얼마 남지 않은 보물창고라 불리는 제주, 우리는 이 제주를 위해서 무엇을 디자인했는가 하는 점이다. 나태에 대한 자성도 필요할 것이며, 그러나 ‘돈방석 위에 앉아있는 거지’처럼 자기가 가지고 있는 보물을 제대로 활용도 하지 못하는 행정의 안일에 대해서도 매서운 자책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1년을 먹기 위해서 100년을 값싸게 팔지 마십시오!”
오키나와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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